페이지상단으로이동
빅이슈 판매원 홈 / 빅이슈 판매원 / 빅이슈 판매원

빅이슈 판매원의 이야기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사당역 3번(지하)

박영길 빅판

2019.06.25

독자 한 분 한 분에 대한 끝없는 감사함 사당역 3번 출구 ‘박영길’ 빅판의 이야기

'올해로 12년째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는 박영길 빅판(빅이슈 판매원)은 《빅이슈》의 산증인을 자처한다. 스무 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50여 년간 성실히 일해온 박영길 빅판은 아흔이 될 때까지, 앞으로 20년은 더 일할 예정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판매지에서 독자와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자신을 치유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사관으로 복무한 뒤 대기업에서 30년 동안 일한 그가 홈리스를 거쳐 빅판이 되기까지, 그의 인생 유전에 대해 들어보았다.'


오늘 날씨가 춥고 궂은데인터뷰하러 오시기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힘들지 않았어요. 제가 빅이슈 사무실을 내 집같이 드나들어요.(웃음) 내 오래된 직장이니까요. 빅판 일을 올해로 12년째 하고 있어요.

12년이면 무척  시간인데요 오랜 세월 《빅이슈》를 판매하셨어요.
제가 군대에서 부사관으로 7년을 복무하고 제대한 뒤 1년 쉬었다가 삼성물산에 들어가서 30년간 근무했어요. 이후 지금까지 일하고 있으니, 일을 50년째 하고 있네요.(웃음) 스무 살 때부터 일했는데 지금 일흔이니까요. 대기업에 다닐 때는 매일 정장 입고, 아침 7시면 딱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했어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오랫동안 일 못 해요. 일이 즐겁다, 일할 수 있어 기쁘다고 생각해야지요.

군대 생활도 긍정적으로 즐겁게 하셨나요?
군대는 즐거울 수가 없지요.(웃음) 고통스러웠지만 잘 이겨내야 한다 생각하고 임했지요. 무슨 일이든 고통 없는 일은 없어요. 그걸 이겨내야 이 험한 인생을 살지요. 안 그러면 못 살아요. 턱도 없어요!(웃음)

 

 

퇴직  홈리스가 되신 거예요?
삼성에서 퇴직하고 경비로 7년간 일했는데, 이후 쪽방에서도 살다가 김포공항 가서 노숙도 하고 그랬어요. 잠도 스티로폼 깔고 자고요. 개인적인 문제가 터져서 그렇게 된 건데, 그 이야기 하자면 2박 3일 해도 부족해요. 여기서 그런 이야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네요. 다 지난 일이기도 하고. 대기업에 다니다 밑바닥 삶도 살아보고, 그러다 보니 곱이곱이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그런 일을 다 넘기고 여기까지 온 거지요. 지금은 사는 게 편안해요.

요즘 《빅이슈》 판매 상황은 어떤가요?
코로나19에 세계경제도 좋지 않다 보니 판매량이 예전에 비해 3분의 1이 줄었어요. 예전에는 잡지도 잘 팔리고 독자들도 지나가다가 멀리서라도 막 손 흔들어주시고, 아주 재미났지요. 신촌에서 7년간 판매했어요. 근처 대학생들하고도 많이 대화하고 소통했지요. 제가 학생들한테 인생 사는 이야기도 해주고 그랬어요.

기억에 남는 독자도 많겠어요.
그럼요. 많고말고요. 며칠 전에도 서강대학교 졸업하고 지금은 취직해 회사에 다니는 한 독자가 잡지를 사 갔어요. 얼마나 반갑던지요. 나보고 “할아버지, 용기 잃지 말고 열심히 일하세요.” 하고 덕담까지 해주고 갔어요. 신촌에서 판매할 때 만난, 진짜 잊을 수 없는 독자가 있어요. 한 유치원생이 매일 엄마 손 잡고 제 판매대 앞을 지나갔는데, 어느 날은 그 꼬마가 엄마한테 “나, 저 책 한 권 사줘.” 이러더라고요. 그렇게 사 가더니 매호 신간이 나오면 사러 오더라고요. 다섯 살짜리 꼬마였는데 지금은 초등학생이 됐겠네요. 제가 어쩌다 판매지에 못 나간 다음 날에는 “할아버지, 어제 왜 안 나오셨어요?” 하고 꼭 물으며 걱정해주고 그랬어요. 서강대학교 축제 때는 특별히 교내에 들어가서 판매하기도 했어요. 학생회에서 학교 안에 판매대를 마련해 초대해줬지요. 학생회장이 총장보다 끗발이 좋더라고요.(웃음) 그 시절에 진짜 재미있었어요.

 

 

오랫동안 《빅이슈》를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요?
인내와 끈기 그리고 노력! 노력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하루에 한두 권밖에 안 팔려도 또 내일을 바라보며 일해요. 전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든요. 안 팔려도 인내하고 끈기 있게 노력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제가 《빅이슈》의 산증인이에요.(웃음)

12 사이 힘든 일도 많으셨을 텐데요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세요?
힘들 때야 많지요. 말도 못 해요. 춥고 더운 건 군대 생활을 오래해서 괜찮은데, 몸이 아플 때나 외로울 때가 제일 힘들지요. 매일 길에서 몇 시간씩 서 있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에요. 저는 부사관 출신답게 군인 정신으로 하지요.(웃음) 지금도 딱 아침 6시에 기상해 하루를 시작해요.

빅판으로 오래 일하신  가장 달라진 점은요?
내 생활 자체가 많이 변했어요. 처음 판매를 시작했을 때는 고시원에서 생활했는데, 많이 힘들었어요. 2019년에 빅이슈에서 임대주택에 입주하게 도와줘 지금은 거기서 지내니, 제 생활이 달라진 게 제일 큰 차이지요. 지금은 대궐 같은 데서 살고 있습니다.(웃음) 방 세 개에 거실, 주방, 없는 거 없이 다 갖춰져 있어요. 저는 제 인생의 두 가지 소원을 다 이뤘어요. 하나는 임대주택 입주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평생 일하는 거였는데, 다 이뤘어요. 임대주택 입주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대자로 뻗어 누워 있는 거였어요. 집이 아주 넓고 들어가면서 도배장판을 다 새로 해서 깨끗해요. 진짜 대궐 같다니까요.(웃음) 고시원에 살다 들어갔으니 오죽 넓게 느꼈겠어요.

 

 

현재 오전에는 초등학교 급식소에서 공공근로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투잡을 뛰는 중이에요. 오전에 학교에 가서 일하고 오후에는 《빅이슈》를 판매하지요. 동네에서 꾸준히 공공근로를 했는데 학교에서 일한 지는 2년 됐어요.

매일 어린이들과 함께하시네요?
그 아이들 보려고 그 일을 하는 거예요. 막 뛰어와서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고, 너무 귀여워요. 두 시간 동안 걔네들 보려고 일해요.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제 손주도 생각나고요. 저는 식기 정리를 주로 하는데 재미있어서 시간이 금방 가요. 공공근로가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니까 일 끝나면 바로 판매지로 가지요.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바빠서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판매에 도전하는 신입 빅판들에게 한말씀 해주신다면요.
저도 처음에는 숫기가 없어 손에 책만 든 채 고개 푹 숙이고 서 있고 그랬어요. 지금이야 당당하게 서 있지요.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특히 춥든 덥든 하루에 몇 시간씩 길에 서 있어야 하는 빅판 일은 끈기가 없으면 못 해요. 요즘 신입 빅판 중에는 들어왔다가 한 달도 못 채우고 그만두는 경우도 있어요. 신입 빅판들에게 끈기를 갖고 조금만 참아내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같아요.
내 나이가 일흔인데, 빅이슈 아니면 전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지금은 사실 아무 걱정이 없어요. 그저 건강하기만 바라요. 나이 많은 사람은 움직여야 건강해요. 일이 없으면 사람이 우울해져요. 밖에 나가 독자들 만나고 소통하고 그게 저한테는 다 치료예요, 치료. 제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할 거예요. 아흔까지 하려고요. 20년 남았네요.(웃음)

 


 

글. 안덕희
사진. 김화경

< 저작권자 © 빅이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