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318 커버스토리

어둡고 푸르른 곳으로부터

2024.04.26

글. 한선규 | 이미지제공. 어드

* 해당 이미지는 팬아터 어드 님의 팬아트 이미지로 <어바등> 공식 일러스트가 아닙니다.

결국 지구는 멸망했다. 운석도 아니고 외계인도 아니고 좀비도 아니고 하다못해 어느 날 던전이 터진 것도 아니다. 여느 때처럼 성실하게 먹고 부지런히 개발한 인류는 자신들이 내던진 쓰레기 탓에 해저 3000m 아래 심해로 기어들게 되었으니. 구멍 뚫린 오존층 사이로 내리쬐는 살인적인 자외선과 영하 40℃에서 영상 45℃를 넘나드는 미친 기온을 피해 8개 선진국이 돈을 퍼부어 구축한 해저 기지, 그곳에 상주할 단 한 명의 치과 의사로 뽑힌 행운아가 바로 우리의 주인공 박무현 씨 되시겠다.

그런데 입사한 지 닷새 만에 해저 기지에 물이 샌다. 탈출하려고 숙소를 뛰쳐나갔더니 웬 미친놈들이 서로 총을 쏘고 있다. 설상가상 겨우 찾은 탈출정은 고장 난 상태. 연산호 작가의 <어바등>은 그렇게 시작된다.


"사람이 살면서 이직처를 잘못 선택할 수도 있지.”

‒ <어바등> 제305화 중

이름 박무현, 나이 30대 초중반, 키 175cm, 운동 싫어하고 커피 좋아하는 직장인. 이 정도 스펙이면 최근 몇 년간 유행하는 웹소설 주인공 도식에 잘 들어맞는 준비된 인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겉보기에 특출한 점 없는 평범성이야말로 웹소설 주인공의 제1 덕목이니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박무현에겐 다른 주인공들 같은 화려한 언변, 재빠른 상황 판단력, 본인만 아는 정보 같은 건 없다. 이 가여운 치과 의사가 가진 재능이라곤 무해한 인상과 약간의 위트, 다정한 말씨,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매일 양치하라고 당부하는 철두철미한 직업 정신뿐.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지 이직처를 잘못 선택한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게 중요하다. 물이 차오르고 총알이 빗발치며 폭력이 난무하는 재난 상황에서도 평범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어린아이를 보호한다. 주먹질하기 전에 대화부터 하자고 한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100kg이 넘는 부상자를 업고 계단을 오른다. 본인만 아는 정보 같은 게 있을 턱이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아예 방송을 켜서 자기가 아는 거 다 털어내고 있으니. 아, 그 정도는 상식 있고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 아닐까요? 그 말이 맞다. 하지만 기억하자. 이곳은 ‘심해’다.

[소개]
한선규
평범한 웹소설 독자.


1 

다른 매거진

No.321

2024.05.02 발매


쿵야 레스토랑즈

No.320

2024.04.15 발매


데이브레이크

No.319

2024.05.01 발매


홍이삭

No.317

2024.03.01 발매


위라클 박위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