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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6

겨울, 거리의 예배자들, 그리고 다시 겨울

2024.02.15

국회 앞에서 기후위기를 주제로 열린 2023 성탄 연합예배 ©윤은성

안녕! 잘 지냈어? 새해가 벌써 한 달이 지나가버렸네. 나는 올해를 마감할 일을 미리 생각해보고 있어. 특히 기다려지는 건 크리스마스야. 올해 말 나는 어떤 마음으로 성탄절 예배에 참석하게 될까. 그때에도 나는 거리에서 예배를 드리겠지. 너는 어떠려나? 새로운 교회를 잘 찾았어? 아니면 이전에 다니던 그 교회에 아직 성실하게 나가고 있으려나. 그도 아니면 나처럼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고 거리를 쏘다니려나. 너라면 사랑하는 친구들 곁을 지키며 고요한 작은 돌처럼, 다니던 교회 안에서 네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도 있겠다.

나는 새로 일을 시작한 낯선 도시에서 도무지 새로운 교회를 찾아가볼 엄두가 나지 않아. 교회에 가본다고 해도 또다시 울면서 나오거나 한없이 차가워진 마음을 닫아버리겠지. 그래도 다음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나는 힘이 나는 것 같아. 그때 돌아볼 요량으로, 나는 꾸준하게 지금의 내 삶을 사랑하면서 꼭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나갈 거야. 계속 지켜내야 할 것들을 함께 지키자고 용기 내어 말하면서 내가 속한 곳에서 기를 쓰며 버티고 연대할 거야. 그런 뒤 성탄절 예배에 참석하면 마음이 다 녹아버릴 테지. 거리에서 열리는 그 춥고 고요한 예배, 구구절절 나누지 않더라도 서로의 슬픔을 알 것만 같은 예배에 참석하면 나는 다 위로받은 마음이 들거야.

매년 주제를 달리해서 성탄절 연합예배가 거리에서 열려. 너와 함께 그 예배에 참석해본 적은 없네. 또 모르지. 회중석 먼 곳에 너도 참여하고 있었을지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말이야. 나는 재작년인 2022년에 처음 참석했는데 서울역에서 열렸던 당시의 예배에 400명 정도가 모였다고 하더라. 정말 추운 날이었어. 주거 취약을 주제로 꾸렸던 예배였어.(이어서 2023년에는 기후위기가 주제였어.) 동자동 쪽방촌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예배가 이뤄지던 서울은 날씨가 흐렸어.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좋은 차갑고 어둑한 날씨였지.

예배에 참석하면서 안전하다는 기분이 들었어. 요란한 캐럴을 부르지 않았어도,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를 축제로 급히 치환하지 않았어도, 선물을 주고받지 않았어도, 혼자 가서 앉아 있었어도 나는 좋았어. 교회에서조차 밀려난 마음이 되어버렸을 때,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거리로 나간다는 게 좀 쓸쓸한 기분도 들게 하거든. 그래도 거리에 있을 그 작고도 좋은 신을 찾아가 경배해본다는 건 담담한 마음이 들게도 했어. 집회 현장과도 크게 다르지 않게, 연대인들이 고스란히 예배자로 참여한 그 순간에 나도 속해 있다는 것, 그 기분이 나쁘지 않더라. 서로 몰라도 어쩐지 알 것만 같았어. 재난 속 공동체 같다는 생각도 들고.

물론 저마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정치적인 입장에 동일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인지 알 수 없지.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더 외로울 것도 없게 느껴졌어. 탄원의 마음이 저마다 있는 사람들일 거란 생각이 들더라. 저버릴 수 없는, 연약한 이들을 위로하는 연약한 신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 같더라.

국회 앞에서 기후위기를 주제로 열린 2023 성탄 연합예배 ©윤은성

재난 속 공동체를 찾는 마음
사람들의 기도문과 발언문들을 듣고. 플라스틱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자니 추위가 패딩 점퍼를 뚫고 들어와 뼛속까지 시렸어. 연고 없이 혼자 찾아갔던 예배에, 시간 되는 사람 있으면 함께 가자고 단체 메신저에 올렸더니 동료도 한달음에 와서 잠시 나란히 앉았어. 동료와 그날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동료를 그 예배에서 만난 것도 참 좋았어.

사실 나는 예배 시간이 평소 그리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어렵네. 어린 나를, 정처 없던 나를 받아줬던 곳이라는 교회에 대한 내 소소하고 깊은 경험들 때문만은 아냐. 내가 배워온 기독교의 가르침은 약자의 종교인데, 자본주의에 쉽게 결탁하게 되곤 하는 모습들, 타자를 배제하는 행태를 많이 보았지.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는 못해. 그러다 교회를 떠났지. 애정을 갖게 된 교회들이 그간 없지는 않았지만 내게 애정을 주셨던 어른분들께 그 애정을 되돌려드리기는커녕 분란을 일으키기도 했어. 꽤 사랑하게 된 교회가 있었는데 그곳에도 나는 마음을 두지는 못했어. 결국 정치성을 배제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결정적으로 지쳤던 것 같아. 신앙이 탈정치적으로 남을 수가 있을까? 기후생태 위기 문제가 탈정치적인 문제로 남을 수 없듯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한 해가 지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네. 재작년에는 거리 예배에 혼자 찾아갔었다면, 작년 성탄절에 나는 발언자이자 기도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어. 그간 나는 기이한 이 세계에서 고립되기보다는 연대하는 쪽을 적극적으로 택하면서 내 삶을 시험해봤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지금은 기후 활동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무참하게 파괴된 갯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어. 이건 전에도 내가 자주 했던 이야기이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해 생태 학살의 현장이 되어버린 갯벌 이야기 말이야. 나는 예배 주최 측과 논의하며 새만금신공항 건설이 예정되어 있는 수라갯벌을 그대로 보존하라고 촉구하고, 인간과 자본으로부터 철저하게 수단화되고 학살된 생태계가 더 이상 파괴되지 않게 돌봐달라고 탄원하는 기도문을 작성했어.

수라갯벌의 목소리를 실제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나는 꿈에서 본 적이 있어. 붉은색을 띤 아름다운 칠면초가 보였어.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서 바닥이 드러나고 연안 생태계를 새로이 형성하게 된 수라갯벌 위에 내가 누워 있었어. 철새가 떼지어 내 몸 위를 날았고. 내 위로 무언가 육중한 것이 지나갔는지 나는 시뻘겋게 훼손된 몸으로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었어. 이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번 성탄 예배 때에는 동물, 수라갯벌, 팔레스타인의 사람들, 여성, 노동자, 이후 세대에 태어날 사람의 목소리로 각각의 기도자들이 회중석에서 일어나 기도문을 읽었어. 석탄 화력발전소 반대 투쟁위에서도 발언을 했고. 나 말고도 또 다른 기도자들이 각자의 기도문을 준비해 읽으면서 신에게 탄원의 기도를 올렸어. 내가 준비한 수라갯벌의 목소리(를 상상한 인간의 기도문) 외에 또 다른 목소리들을 들으면서, 그 모든 이야기에 내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어. 생명이 있는, 그리고 함께 생태계를 이뤄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이들. 무참한 폭력. 도구화된 모든 이들. 도처의 이 모든 폭력을 정지해달라는 작고 작은 기도와 움직임들.

아마 나는 계속해서 어딘가에 속하지는 못한 채 거리의 예배자로 살아가게 될 것 같아. 시인인 나는 아마 거리에서의 경험을 담은 시를 주로 쓰게 될지도 모르겠어. 거리에서는 기도를 쉴 수가 없겠다고, 기도를 쉬지 말아야겠다고, 그런 의도치 않은 다짐을 자연스레 하게도 돼. 그리운 사람이 많지만 나는 지금은 혼자 있네. 나를 돌봐주는 이들은(고양이 두 녀석을 포함해서) 많으니까 혹여라도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 역시 이젠 너를 걱정하지 않거든. 작은 한 인간의 자리에서 너는 성실하게 네가 담당한 일들을 풀어가겠지. 나도 그래. 어려운 숙제를 풀 듯이 사무 업무도 하면서. 이따금 글을 쓸 땐 너를 잠시 떠올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런 내게 그간 애썼다고 조금은 반가워하면서 알은체해주지 않을래? 구하지 못한 것들을 순간 떠올리면서. 종내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소개

윤은성
거리와 동료, 시(詩), 그리고 수라 갯벌의 친구. 시집 <주소를 쥐고>를 펴냈으며, 전북녹색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글. 윤은성 | 사진. 박찬영·윤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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