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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9 에세이

기후와 시인 - 쓰지 못하는 사람

2024.05.09

쓰지 못하는 사람


글. 윤은성

최근에는 시를 쓰지 못했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전업 작가가 아닌, 일을 하면서 글쓰기를 겸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내가 시를 쓰지 못한 온전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글쓰기라는 행위 앞에서 방황하는 마음을 스스로 기다려줄 여유와 그렇게 할 필요를 조금 멀리 내버려둔 채 빠르게 수행해야 할 일들을 했다. 작은 힘이나마 신속하게 보태는 것이 필요한 연대 현장에 참여했다. 어떤 일에 먼저 참여해야 할지 우선순위조차 정하지 못한 채 시시각각 참혹한 소식들이 들려왔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시 쓰기를 비롯해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마음속 마당에 시멘트 포대를 쌓아둔 채 방치해놓듯이 잘 돌보지 못했다.
내가 시를 쓰는 기쁨과 위로를 맛봤던 건 대개 슬픔을 깊이 들여다보고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통해서였는데. 나는 기후생태 위기와 사회적 참사들을 내가 연속성 있게 체감했을 무렵 느낀, 시를 더 이상 쓰지 않아도 이젠 상관이 없겠다는 마음이 불현듯 찾아왔던 순간을 기억한다. 균형이 필요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날은 성실하게 저물었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감한 순간들을 기억했고 연대하려 노력했으나 정작 혼자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허탈하고 외로운 시간도 많았다. 내 편에서 혼자 보낼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기도 했다.

전주천에 다시 심은 버드나무 가지 ⓒ윤은성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 쪽에서
시인이자 활동가인 희음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소중하게 발견해내곤 했던 타자의 자리를 떠올리면 나는 여전히 내가 누군가로부터 지켜지고 있는 타자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낀다. 희음이 자신의 시집 첫 페이지 ‘시인의 말’에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뒤에는/ 늘 사람이 있었습니다.”(희음,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걷는사람, 2020)라고 썼을 때 그녀가 발견해버린 “사람”은 근대의 합리적 이성의 소유자로서의 인간이 아닌, 존중해 마땅할 모든 존재를 아우른다. 쉬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작은 기척을 겨우 보내오는 이들을 향하며, 쓸모를 다하고도 오래 무참하게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권리의 영역에 포섭되지 못해온 이들의 쪽으로 희음의 시와 활동은 움직이고 있다.
결국 이 같은 맥락에서의 “사람”은 오히려 인간에 의해, 자본주의에 의해 수단화된 비인간동물을 포괄하며, 인간과 비인간이 공거하는 이 땅 위의 생태적 지평으로서의 공간까지 포괄한다. 멸종 반란의 활동가인 희음은 가덕도에 신공항이 건설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시민행동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동백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는 오래된 숲이 있고 상괭이들의 서식지이기도 한 가덕도와 그 연안. 신비로이 생명이 깃든 생기 있고 영적인 공간에서, 이제 가덕도는 다른 신공항 건설 예정지들과 더불어 숱한 뭇 생명들을 살상하는 죽음의 공간으로 바뀔 상황에 처해 있다.

맞아들이는 일
최근 곱씹게 된 안희연 시인의 문장을 본 건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천막 농성장의 지킴이가 되어 1인 시위를 진행하기 위해 정부세종청사에 갔을 때였다. 나는 농성 천막 앞에서 갯벌을 보존하고 신공항을 건설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피켓을 세워놓고, 접이식 의자를 펼쳐놓은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안희연 산문 중 한 편에서는 식물을 집에 들여오려는 과정을 다루면서 그것을 “내 삶으로 한 존재를 끌어들이는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내 삶으로 한 존재를 끌어들이는 일로서의 관계 방식은 자신이 주체성을 잃지 않은 채 사려 깊게 타자와의 관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자를 맞이하는 내 마음가짐은 다시 말해 잘 돌보겠다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책임감과 다르지 않다. 식물이라고 해서 마음을 덜 쓰겠다거나 함부로 대하겠다는 것이 아닌, 오히려 섬세하게 그 식물 편에서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신경 쓰겠다는 기록들이 신중하게 느껴졌다.(안희연,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난다, 2023) 내 안에 들어올 타자들을 상처 입히거나 아프게 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나는 배우고 싶다. 수많은 소식들을 흘려보내며 빠르게 소진될 수밖에 없는 매일 매시간에, “내 삶으로 한 존재를 끌어들이는 일”로서의 관계를 맺기 위해 나 자신을 돌봤는지를, 그리고 관계적인 넉넉한 마음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었으면 한다.

천막 농성장에 마련한 책 읽는 빈자리 ⓒ윤은성

문장을 읽는 마음
바람에 날아가려는 피켓을 손으로 붙잡으면서, 또 책을 읽는 한 시간 내내, 천막 농성장 앞을 지나치며 점심 식사를 하러 다녀오는 많은 행정 공무원들을 보았다. 모두 선량한 진심이 있는 이들일 텐데. 하지만 왜 자행되고 있는 파괴에 있어서는 개발의 편에 서는 일이 비일비재할까. 갯벌을 매립하거나 동백 숲을 파괴하고 신공항을 짓는 일을 그만두고, 공간에 깃든 생명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관계의 주체로서 타자를 내 삶에 맞이하면서, 타자의 알아듣기 어려운 말 앞에 서보면서 살아가면 정말 안 될까. 자멸에 이르게 할 이곳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에 힘을 보태면서, 이곳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야만 할까.
차라리 시를 비롯해 문장을, 책을 읽는 건 어떨까. 피켓을 세워두고 앉아 책을 읽는 나를 보았을 공무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내내 고민한 것은 타자와 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타자와 내가 연루되어 이 기후생태 위기를 공동으로 책임지는 마음을 서로에게 촉구하되 그것이 폭력적인 동일화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배우고 싶다. 이것이 당장의 긴급한 기후위기 상황과는 결이 맞지 않는 한가로운 성찰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주천 버드나무 ⓒ강우성

긴급한 끈기의 일
가장 최근인 오늘은 전주천에 모인 시민들과 함께 갯버들을 심고 왔다. 앞서 전주천에서 벌어진 버드나무 무단 벌목 이후, 그에 저항해 벌목된 자리에 갯버들을 심는 시민행동이었다. 어린아이들도 나와서 잘린 버드나무 밑동의 단면을 어루만지며 “사람이 잘라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버드나무 가지들을 꼭 쥐고 있던 아이의 작은 손을 기억한다. 여리지만 악력이 있는 작은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힘을 주고 있던 모양을. 버드나무는 시민사회와의 소통 절차가 필요했음에도 새벽에 불시에 잘려나간 것으로, 이 일은 전주 시민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바 있다. 홍수 피해 예방을 목적으로 베어냈다고 하지만 버드나무가 홍수 피해에 영향을 준다는 근거를 전주시는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이번 벌목은 ‘전주천·삼천 통합문화공간 조성 사업(명품 하천 365 프로젝트)’ 시행 계획을 시장이 직접 발표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진행됐다는 점에서 사업의 전초 단계임을 방증하고 있었다.
갯버들은 꺾어서 땅에 꽂아두기만 해도 잘 자라나는 나무라고 한다. 이번에 심은 작은 버드나무 가지가 모두 뿌리내릴 가능성은 없다고 들었지만, 꺾꽂이에 알맞게 준비된 가지를 보니 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버드나무가 자라나고 아름드리를 이루기까지는 몇십 년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그동안 전주천이 인공적으로 조성된 기이한 생태 하천이 아니라, 생명이 깃드는 진정한 의미의 생태 하천으로 남기를. 천변을 따라 산책하는 인간도, 또 도시 하천에선 드물지만 전주천에선 산다는 쉬리도 갯버들과 더불어 오래 평안하기를. 그 긴 시간은 기후위기라는 긴급한 사안 앞에서도 끈기 있게 삶에 뿌리내린 채 내 삶을 긍정하는 것과 비슷한 일일지도 모른다.
글을 쓰거나 읽고 나를 돌보는 일은 기실 타자 그리고 이 세계와 나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일과 관계된다. 본질적으로 글쓰기는 분리되었던 타자와의 관계를 새로이 연결하거나, 타자와의 적절한 거리감을 확보해 나를 보호하고 위무하는, 또 그 과정을 다루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이 일은 타자와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를 조절하는 좋은 한 방법론이다. 글쓰기를 회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글쓰기 행위 자체를 예찬하는 데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돌보고 지켜내야 할, 지금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도처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잠시 머무를 수 있었단 것만으로도 어떤 바닥에서는 충분히 회복이 되므로.

* 이번 호를 끝으로 ‘기후와 시인’은 연재 종료됩니다. 그동안 이 코너를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윤은성
거리와 동료, 시(詩), 그리고 수라 갯벌의 친구. 시집 <주소를 쥐고>를 펴냈으며, 전북녹색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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