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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8 인터뷰

체인지 러버스 - 해보자, 바로 지금 / 한국여성노동자회 연대사업국장 레나

2024.05.07

“새로운 협업 툴을 도입하자는 제안을 하면, 무조건 해보자고 답해요. 조금 고민해도 좋을 것 같은데.(웃음)”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일한 지 6년에 접어든 레나(노헬레나)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 그곳에서 여성과 노동자로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환경을 분석하는 활동가들에게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레나에게 활동가로서 꿈꾸는 좋은 한국 사회의 모습을 물었다. 노동조합 가입 이력을 자기소개서에 기재할 수 있는 세상, 페미니스트임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해도 아무렇지 않은 세상. 그런 사회를 조금 더 빠르고 선명하게 구현하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서로에게 망설임 없이 “해보자!”고 말할 수 있는 곳, 한국여성노동자회로 출근하는 활동가 레나의 이야기다.

글. 황소연 | 사진. 김화경

최근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업무는 뭔가요?
한국여성노동자회는 다른 시민단체처럼 어떤 사안이 사회적으로 가시화됐을 때 여러 단체가 결합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업을 벌이는데, 저는 그 담당자로 일해왔어요. 지금은 SNS 운영과 활동을 소개하는 업무도 맡고 있어요. X,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세 채널엔 활동 소식을 놓치지 않고 업로드하는 게 원칙입니다.

활동가로서의 첫 커리어로 한국여성노동자회가 갖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질문을 받고 생각해보니, 제가 입사하고 되게 기뻤던 기억이 있는데 한동안 그걸 잊고 지냈더라고요. 고등학교 졸업 후 삼수를 했어요. 이후 콜센터와 결혼정보회사, 방송국 등 다양한 곳에서 일하다 활동가로 들어오게 됐거든요. 불안정한 일자리를 경험한 저에겐 이 일자리가 정말 중요했어요. 우선 성평등한 공간에 입사하는 게 목표였거든요. 어린 여자, 젊은 여성에 대한 타자와 대상화가 심하게 발생하는 일터를 거치면서 많이 소진된 상태였어요. 두 번째로는 충분한 임금을 밀리지 않고 제때 주는 곳을 원했어요. 한국여성노동자회는 30년이 넘은 시민단체고, 이 단체의 지향점에 공감하기에 즐겁게 일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지난해 9월, 고용노동부가 고용평등상담실 사업 예산 삭감과 민간 상담실 지원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상담실 예산을 삭감하고 직접 여덟 곳의 상담실만 운영하겠다고 한 정부 결정이 왜 문제인지 독자들에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활동가들은 1년에 한두 번 정도 고용노동부와 간담회를 해요. 교육도 이뤄지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인데, 2023년 상반기에 있었던 간담회에서 예산이 줄어들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후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와 사무처장이 고용노동부가 국회 예산처에 제출한 예산안을 검토했는데, 고용평등상담실과 관련된 항목이 아예 없는 거예요. 통보나 공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찾아낸 거죠. 이후 바로 기자회견 등의 대응을 하기 시작했어요. 고용노동부에서는 ‘나중에 말을 하려고 했다.’는 식의 얘기를 하는데 예산안을 보면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던 거죠. 논의나 어떤 협의도 없는 상태로요.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은 상담실의 운영비로 쓰여요. 그 안에 상담원 인건비, 사무비, 홍보비도 포함되고요. 이게 다 삭감된다는 건 여성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사라진다는 의미죠. 예산이 삭감되면 단체들이 존폐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열악하다는 걸 고용노동부도 알 거예요. 원칙적으론 고용평등상담실이 9시부터 6시 등 정해진 운영 시간이 있어요. 그런데 모든 노동자들이 그 시간 안에 상담받을 순 없잖아요. 활동가들이 주말이나 퇴근 시간 후 상담을 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밀착 지원을 하는데, 예산이 삭감되면 돈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하잖아요. 그만큼 상담에 들이는 에너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죠.

고용노동부에서 만드는 상담실 여덟 곳은 모두 신설이라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고용노동부에서 직접 운영한다고 해요. 지금까지 단체들이 운영하면서 쌓아온 정보, 노하우, 전문성이 사라지게 돼요. 상담원을 채용해 교육 후 운영하겠다고 하지만 심도 있는 지원이 될지 의문이에요. 저희는 사실상 민원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또 전국에 여덟 군데의 상담실만 있다면 이용하고자 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선 접근성에 문제가 생기는 거죠.

이후 시민들의 기부가 이어졌는데요. 시민들의 응원을 받은 소감은 어땠나요?
한국여성노동자회는 11개 지역 지부에 활동가들이 일하고, 함께 소통하는 채팅방이 있어요. 이 방에서 기부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한 시간에 막 몇십 퍼센트 채워지고 이러니까 다들 너무 신났죠. 많은 이들이 우리 활동을 지켜봤고 응원해준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외롭지 않다는 걸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활동가라는 직업이 낯선 이들에게는 본인을 어떻게 소개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곳에서 솔직히 말했다가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서, 전략적으로 말해요.(웃음) 인권에 관한 활동을 한다, 그냥 직장 다닌다고도 하고요. 페미니즘이나 인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모인 공간에선 소속을 밝히기도 해요. 꼭 인권에 관심이 있지 않아도, 저의 일에 궁금해하는 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거든요. 약간의 의견 대립을 감수하고 대화할 때 얻는 즐거움도 있어요.

여성 시민단체 활동가로서는 자신을 소개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었어요. 페미니즘을 학문이나 관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존재하는데요.
무언가에 대한 편견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편견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태도로 발화하고 질문하느냐에 따라 대화의 가능성이 정해진다고 봐요.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니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시절에는 공약으로, 지금 정부는 정책적으로 반페미니즘을 활용하고 있잖아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불평등에 대한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세력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식의 발화였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과정에서 페미니즘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이 돼요. 여성 노동과 연관한 안건을 다루는 단체라,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담론과 결탁하지 않는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요.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주목하고 있는 사안은 게임, 웹툰 등 콘텐츠 업계의 사상 검증 이슈인데요.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혔을 때, 이것이 해고와 직결되는 구조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어요.

쉬실 땐 어떻게 시간을 보내세요?
SNS를 일상적으로 안 보려고 해요. 영화와 책을 보는 편인데, 지금은 김초엽 작가의 <파견자들>(퍼블리온, 2023)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어요. 작가가 소수자를 이야기에 녹여내는 관점이 굉장히 좋아요.

활동가가 갖춰야 할 전문적 역량 하나를 꼽아주신다면요?
이게 제일 어려웠어요.(웃음) 활동가를 하다 보면 다양한 능력을 키울 수 있어서, 조급해하지 않는 게 오히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경청하는 태도’는 필수 역량이에요. 우리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지만, 이 세상이 평등한가를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거든요. 예를 들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단체의 대표라고 하면 조금 더 말에 힘이 실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어요. 경력이 주는 권위가 있으니까요. 거기에 단순히 반박하라는 게 아니라 대표와 1년 차 활동가인 누군가가 말했을 때, 두 사람의 말을 똑같이 귀담아서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게 키워야 할, 갖춰야 할 전문성이라고 생각해요.

올해 레나 님에게 생길 변화 중에 기대되는 건 뭔가요?
집을 나와서 산 지 7년이 됐고, 언제나 친구와 살았거든요. 근데 이번 달에 혼자 독립을 해요. 무섭기도 하고, 신나고 떨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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