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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7

이름 없이 죽어간 누렁이 이야기

2020.05.26 | 카라 에세이

생존자의 안부

디아나가 육아를 졸업했다. 태어난 지 2개월 된 다섯 형제가 디아나에 대한 관심을 조금 거두고,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새끼들이 젖을 떼고 디아나도 깨끗한 사료를 먹으면서 살이 제법 붙기도 했다. 구조 당시 갈비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말랐던 몸은 이제 썩 건강해 보인다. 요즘 디아나는 활동가들과 함께 의젓하게 산책을 다니고, 봄바람을 쐬며 따뜻한 봄을 누리고 있다.

어린 5형제도 제 세상을 만났다. 굶주리던 지난날을 보상받겠다는 듯 아주 열심히 사료를 먹고 하루에 0.2kg씩 살이 찌고 있다. 자기한테 관심을 가져달라고 귀가 찢어져라 짖기도 해서 행동 교육이 시급한 상태다. 토실토실한 강아지들은 한데 모여서 짓궂게 장난치고 뛰어놀기 바쁘다. 사실 이 강아지들이 모두 친형제는 아니다. 한가족처럼 자랐을 뿐 몇 마리는 디아나 새끼지만 나머지는 다른 개의 새끼다. 그 개는 얼마 전 새끼들이 보는 앞에서 목매달린 채 죽음을 맞이했다.

끔찍한 동물학대 사건의 전말
억울하게 죽은 어미 개의 젖은 한참 불어 있었다. 새끼들을 먹여 기르던 흔적이다. 어미의 삶이 고통스럽게 끝난 현장에는 새끼들과 디아나가 남아 있었다. 그들의 사육 환경은 열악했다. 제보자는 그들의 ‘보호자’가 개들에게 먹이로 사료가 아니라 토막 난 고양이 사체를 줬다며 증거 사진을 제시했다.

제보자는 해당 사건을 경찰과 지자체에 신고했으나,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사체를 그냥 두고 가라고 하는 등 엽기적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지자체에서도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는 각서를 서류로 꼭 받아달라는 제보자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경기도 광주 경찰과 지자체 모두 이토록 잔혹한 동물학대 범죄행위를 두고도 대처에 소극적이었다.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남겨진 또 다른 어미 개 디아나와 새끼들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제보자의 연락을 받고 카라의 활동가들은 급히 현장으로 달려가 디아나와 새끼 다섯 마리를 만났다. 디아나는 앙상한 몸으로 제 새끼들뿐 아니라 죽은 어미 개의 새끼들까지 살뜰히 돌봐주고 있었다.

카라의 활동가들은 해당 학대자에게 여섯 마리 개들에 대한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아내고 어미 개를 목매달아 죽인 데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고발장을 접수했으며 이후 사건은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학대자를 엄중히 처벌하길 요청하는 탄원서에는 일주일 만에 11,000명의 시민이 서명을 했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은 만큼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하고, 우리가 앞으로 이끌어가야 할 몫이기도 하다.

한국의 누렁이들을 구할 ‘누렁이법’
동물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개를 비롯한 동물의 ‘임의 도살’을 금지하는 법이 필수적이다. 현 동물보호법에
누락돼 법의 실효성과 완결성을 심각히 훼손하는 임의 도살 금지 조항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며,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피학대 동물 보호 조치 역시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개를 식용하는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누렁이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름도 없이 그저 누렁이로 불리다 고통 속에 생을 마쳤을 수많은 개들과 지금도 학대 상황에 놓인 동물들이 앞으로는 꼭 생명으로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름 없이 죽어갈 뻔했던 우리 디아나와 다섯 형제들에게도 봄날처럼 다정한 가족이 생기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사진 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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