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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1 스페셜

<선량한 차별주의자> 서평

2020.02.21 | 믿고 싶지 않아도, 우리는 차별주의자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빈다." 같은 말에 토를 달면, 어쩐지 쪼잔한 사람이 되는 듯하다. 차별받았다고 생각하기 싫은 순간도 있기에, 우리는 가끔 차별적인 발언과 행동 앞에서 "포기하면 편해."라는 말을 따르고 싶어진다. 김지혜 교수는 자신의 저서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그럼에도 꾸준하게 덤벼보자고 손을 내민다. 저자는 자신이 사용한 '결정장애'라는 말에 대한 누군가의 지적을 출발점으로, 소수자를 향한 혐오표현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누군가를 차별한다고 믿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차별주의자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자리 잡는 데까지는 한국 사회가 성공했다고 보아야 할까? 누구나 자신이 선량하다고, 다른 사람의 존재에 열려 있다고, 타인의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우리가 차별주의자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종종 그런 순간을 마주할 것이라는 진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다양한 통계・판례와 함께 책을 채우는 것은 사람들의 '말'이다. 여성은 더치페이를 하지 않고 돈만 밝힌다는 말, 난민은 성범죄를 저지르고 폭력적이라는 말, 장애인은 소통이 되지 않아 식당에 들어올 수 없다는 말, 외국인이 목욕탕에 들어오면 손님들이 싫어한다는 말…. 그리고 나는 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말. 저자는 모두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고 외치는데, 차별을 받는 사람은 많은 '기현상'을 풍부한 예시를 제시하며 차근히 해석한다. 수많은 말들은 증명한다. 차별은 공기처럼 떠돌고 있다고 말이다. 내 주변엔 차별이 없다는 말은 상상에 불과하다고.

이와 더불어 지적하는 것은 차별과 혐오 표현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가 산적한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지만, 내 주변부터 시작할 수는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든 차별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해도 되는데, 퀴어 축제는 안 했으면 좋겠어. 축제만 안 하면 나하곤 상관없어." 이런 말은 사실 성 소수자의 존재를 혐오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로 사회에 쉽게 통용되는 '정상성'을 공유하는 '나'와 그렇지 않은 타자를 구분한다. '동성애'라는 낱말의 자리는 언제나 양성애, 여성, 난민, 장애인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하는데, 차별을 단지 누군가의 '마음 씀씀이'에서 비롯한 배려만으로 해소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법으로 모든 것을 방지하고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 간 약속의 계기로 삼는 것을 중요한 점으로 짚는다. '단일민족'을 강조해온 역사를 경험한 한국은 결혼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 난민 입국 등의 사회현상을 맞닥뜨리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우리는 난민뿐 아니라 강제 전역을 당한 트랜스젠더 하사와 여대 입학을 포기한 트랜스젠더 청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발생 이후 인종차별을 받는 세계 곳곳 아시아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드러나지 않은 차별은 더욱 많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서나 차별을 범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에서 차별주의자를 탈피하는 삶은 시작된다. 그것은 결코 어느 순간 완성되지 않는다. 차별과 혐오 표현에 대한 논의가 '어려운 말'이 아니라, 일상에서 서로에게 질문해야 하는 주제임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혐오란 본디 자신의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문제를 합리화한 결과가 차별과 혐오라는 것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역시 묻는다. 지금, 당신이 외면하고 싶은 문제는 무엇인가?


황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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