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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0 커버스토리

비하인드 컷으로 본 그레타 거윅의 현장

2020.02.10

나는 그레타 거윅을 좋아한다. 나는 영화 현장의 비하인드 사진을 좋아한다. 고로 나는 그레타 거윅의 영화 현장 비하인드 사진을 좋아한다. 그레타 거윅의 첫 단독 연출 장편 <레이디 버드>는 2017년 하반기 북미 영화제에서 공개됐을 때부터 입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에 나는 목이 빠져라 2018년 상반기 예정이던 국내 개봉을 기다렸다. 그해 이맘때, 그러니까 북미 시상식 시즌에 영화의 비하인드 사진이 풀렸을 때 나는 영화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바로 그 사진을 노트북 배경 화면으로 설정했다. 가장 먼저 꽂힌 사진은 따스한 캘리포니아 햇살을 받으면서 열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그레타 거윅과 경청하고 있는 티모시 샬라메의 사진이었다. 그레타 거윅이 주인공 역 시얼샤 로넌과 루카스 헤지스 사이에 앉아 두 사람의 무릎을 감싸고 디렉팅하는 사진도 매우 좋아한다. 이런 모습은 그녀가 배우 출신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그레타 거윅은 배우가 현장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만나는 헤어 메이크업 팀, 의상 팀, 사운드 팀 등을 철저하게 준비해 배우의 연기 컨디션을 보장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눈에 띄는 점은 가슴팍에 붙어 있는 이름표다. 자세히 보면 'Greta'라고 적혀 있고, 그 밑에 'Breakfast at Tiffany's(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고 쓰여 있다. 이 또한 배우들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다. 세트장에 사나흘만 오는 배우들은 스태프의 이름을 전부 외우기가 힘들 텐데, 그들을 위해 스태프 전원이 이름표를 붙이게 했다고 한다. 이는 그레타 거윅이 배우로 출연한 <우리의 20세기>(2016년)의 감독 마이크 밀스의 현장에서 배운 것이라고 한다. 한편 이름 밑에 영화 제목은 왜 적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감히 추측하자면 스몰 토크 주제가 될 만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의 제목을 적은 것은 아닐까? 세트장의 분위기에 맞춰 감독 자신의 복장을 택한 것도 너무 좋다. 고등학교 졸업 댄스 장면을 찍을 때 귀여운 파티 드레스에 손목 장식까지 갖추고 카메라를 다루는 모습이 단연 최고다. 가장 좋은 것은 아무래도 그레타 거윅이 모니터링을 하며 웃는 모습이다. 자신이 글로 쓰고 고민했던 것들이 눈앞에서 실현되는 순간, 감독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이로부터 2년 후 <작은 아씨들>의 비하인드 사진도 풀렸다. 이번에 풀린 사진도 마찬가지로 즐겁고 따스하다. 특히 19세기 말 복장을 하고 있는 배우들 틈에서 그레타 거윅이 맥북을 열어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는 연대 착오적 사진에 눈길이 갔다. 감독의 클래식한 코트 덕분에 그녀까지 '작은 아씨들'중 한 명 같다. 야외의 자연광에서 찍은 <레이디 버드> 비하인드 사진과 달리 <작은 아씨들>은 시대를 고증한 세트장과 고풍스러운 실내조명 때문인지 비하인드 사진도 매우 드라마틱 하다. 이번 영화에서도 주인공을 맡은 시얼샤 로넌을 디렉팅하고 있는 사진은 영화 스틸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한편 대배우 메릴 스트립을 디렉팅하는 모습을 담은 비장한 사진은 여성 영화인의 연대와 뒤따르는 세대교체를 요약한다. 그레타 거윅의 비권위적인 촬영 현장은 구설수에 오르곤 하는 몇몇 남성 감독들의 강행군, 심지어 폭력적인 촬영 현장과 대조된다. 그레타 거윅은 영화는 고생을 많이 해야 좋은 예술이라는, 감독의 독자적인 예술이라는, 여성이 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신화를 깨부수고 있다. 이런 점에서 2020년대를 이끌 감독으로 호명되고 있는 그레타 거윅이 이번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로 지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첫 번째 여성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가 전쟁 영화 <허트 로커>(2008년)로 수상했다는 사실은 아카데미가 생각하는 '중요한 영화'는 몇몇 아씨들의 '작은' 세상을 담은 영화와 거리가 멀다는 것 또한 암시한다. 아카데미의 시대착오적 고집과 무관하게 그레타 거윅과 그녀의 크루는 이미 새로운 방향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you better start swimmin
헤엄치기 시작하는 게 좋을 거예요
Or you'll sink like a stone
아니면 돌처럼 가라앉을 테니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시간이 변하고 있으니

-
밥 딜런(Bob Dylan)
'The Times They Are A-Changin'


문재연
영화 팟캐스트 '씨네는맞고21은틀리다'에서
수다를 떠는 것으로 모자라 브런치와 왓챠에서 puppysizedelephant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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