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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8

작은 김우중의 사회

2020.01.07 | 성현석 COLUMN

옛날 대기업을 닮은 요즘 가계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세상을 떠났다. 대우그룹은 부채 비율이 높기로 유명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1997년 외환위기 이전의 한국 대기업들은 대개 그랬다. ‘사업은 남의 돈으로 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흔히 쓰였다.

김우중의 성공시대

외환위기 이전에는 ‘무리한 차입경영’에 대한 비판이 잦았다. 경제성장률이 대체로 은행 금리보다 높던 시절이다. 소비 욕구에 비해 상품이 적었다. 물가는 쉽게 올랐고, 기업이 만드는 제품의 품질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국내에선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됐다. 반면 해외에선 한국 기업은 제품 경쟁력이 약했다. 기업 입장에선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을 한도까지 빌려서 공장을 짓고, 국내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파는 게 유리한 선택이었다. 반면 정부는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 안주해서 편하게 돈을 벌기보다 해외로 진출하는 모험적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해야 했다. 한국은 기초 자원을 수입해야 하는데, 수입 대금은 달러로 결제한다. 따라서 충분한 달러를 확보하는 것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정부는 수출 기업에 대해 파격적인 특혜를 내걸었다. 대우는 이 같은 경제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기업이었다. 모태가 무역상사였고, 제조업 계열사들도 해외영업에 적극적이었다. 대신, 수출기업에 제공된 혜택을 싹싹 긁어 누렸다. 수출 기업은 은행 대출 받기가 쉬웠던 시절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고 신규 투자를 하는 데도 대우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공급자 우위 시장이라는 당시 한국 경제의 특징도 최대한 활용했다. 공급자 우위 시장에선 제품에 굳이 첨단 기능을 넣을 필요가 없다. 기본적인 품질만 보장하면 된다. 대우는 다른 대기업에 비해 연구개발 투자에는 소극적이었다. 대신 ‘탱크주의’를 내세웠다. 첨단 기술을 활용하지는 않되,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광고 문구였다. 당시 시장 상황에선 잘 통하는 광고였다.


대우 식 경영은 이제 안 통한다

외환 위기에서 회복된 뒤엔, 모든 게 달라졌다. 위기에서 살아남은 대기업들은 정규직 채용 규모를 줄였다. 대신, 정규직 급여는 경제성장률보다 빠르게 올랐다. 유학생 수도 크게 늘었고, 청년들은 거의 의무적으로 영어 회화를 익혔다. 해외여행을 경험한 비율도 꾸준히 늘었다. 회사원이 여름휴가를 외국에서 보내는 일은 익숙한 풍경이 됐다. 국내 소비자들은 비싸고 좋은 제품을 살 만한 여유가 생겼다. 또 그들은 해외여행 경험과 인터넷을 통해 해외 제품과 국내 제품을 비교하는 안목을 지니게 됐다. 공급자 우위였던 국내 시장은 서서히 수요자의 힘이 세지는 쪽으로 바뀌었다.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시절은 지나갔다. 제품을 만들기 전, 기획하는 단계부터 소비자들의 수요를 섬세하게 살펴야 하는 때가 됐다. 기업 안에서 마케팅 부서의 역할이 강조됐다.

기술개발은 아주 중요해졌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살아남은 대기업들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 이들 기업은 이제 가격이 아니라 기술로 경쟁한다. 기술 표준을 장악하고, 기술 경쟁을 선도하는 기업이 됐다. 따라서 연구개발 투자는 최소화하고, 대신 기본적인 품질관리에만 충실하겠다는 대우 식 경영은 통하지 않게 됐다.


지난 세기의 성공 방정식, 새로운 세기의 한계

설령 대우가 지난 세기 말에 망하지 않았더라도, 새로운 세기의 경제 환경에 적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세기의 성공 요인은 새로운 세기에선 한계가 됐다. 지난 세기의 기업가는 대출을 최대한 많이 일으키는 게 능력이었다. 시중 은행에 대한 정부의 장악력이 강하던 시절이므로, 정치인 및 관료와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지가 기업가의 능력으로 통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가 인사의 중요한 평가 요소였다.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 기관에서 특정 학맥이 부상하면, 관련 기업에서도 같은 학맥이 승진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대출에 덜 의지하게 되면서 대기업 안에서 학벌주의도 전보다 완화됐다. 이른바 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 출신 경영자의 비율이 꾸준히 줄어든다는 보도가 나오는 배경이다. 기술 수준이 기업의 정체성까지 결정하게 되면서,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의 비율이 꾸준히 늘었다. 역시 대우 식 경영과는 반대 흐름이다. 비평준화 시절에 경기고등학교를 나왔던 김우중 회장은 경기고 인맥을 잘 챙긴 것으로도 유명했다. 또 연구개발 투자의 중요성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필요한 기술이 있으면 사 오면 될 것 아니냐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대우 해체 이후 김우중 회장이 베트남에 주로 체류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자신의 성공 방식이 후발 산업화 국가에 어울린다는 것을 잘 알았다. 정부 관료와 유착해서 대출을 최대한 확보하고, 국내 시장에선 기술 수준이 낮되 수익성이 높은 제품을 주로 팔고, 해외에선 수익성도 낮은 제품을 박리다매 방식으로 파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선진국을 추격하는 단계를 벗어나는 순간, 힘을 잃는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 살아남은 대기업들은 그들이 역시 갖고 있던 대우와 닮은 요소들을 버려야 했다. 대신, 대우의 경로와 다른 길로 나아갔다. 그래서 대기업에 대한 비판 내용도 달라졌다. 대우의 전성기, 지난 세기엔 대기업이 몸집 불리기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이 잦았다. 부채 비율이 너무 높고, 위험한 사업에 함부로 뛰어들며, 직원 규모를 무작정 늘린다는 비판이었다. 요컨대 남의 돈으로 사람 쓰고 사업한다는 비판이다.

반면 2000년대 들어서는 비판 내용이 정반대가 됐다. 기업이 남의 돈을 빌리기는커녕, 자기 돈도 잘 안 쓴다. 현금을 쌓아두기만 한다는 비판이다. 위험한 사업에 뛰어들기는커녕, 기업가 정신을 잃었다는 비판이 잦다. 이미 확보한 기득권에 안주하는 사업만 한다. 정규직에겐 높은 임금을 주되, 채용 규모는 줄인다. 대신 비정규직을 늘린다.


2000년대, ‘작은 김우중’의 시대

그 영향을 사회 전체가 겪고 있다. 은행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줘야 유지된다. 지난 세기엔 노동자가 자기 월급을 은행에 맡겼다. 은행은 그 돈을 기업에 빌려줬다. 어떤 산업에 주로 빌려줄지는 사실상 정부가 정했다. 정부가 전략적으로 특정 산업을 키우는 게 가능했다. 정부가 키우기로 한 산업에 뛰어 드는 기업은, 맨땅에 공장부터 짓는 수고를 하는 대신, 대출을 쉽게 받았다. 이런 구조에서 성공한 기업이 재벌이 됐다.

그런데 새로운 세기엔 기업이 은행에게서 돈을 많이 빌리지 않는다. 정부 역시 어떤 산업을 새로 키워야 할지를 정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은행은 누구에게 돈을 빌려줘서 수익을 내나. 2000년대 들어 가계 대출이 급증했다. 가계가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부동산 투자를 했다. 2000년대 들어 서울 강남 부동산 가격은 대체로 오르는 방향이었다. 적어도 은행 이자보다는 상승폭이 훨씬 컸다. 그러니까 가계 입장에선 은행에서 돈을 많이 빌릴수록 유리하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외환위기 이후 살아남은 대기업의 정규직, 그리고 공무원과 교사 등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좋다. 이들 계층은 교육 수준도 높은 편이어서, 새로운 세기의 경제 환경도 빨리 깨우쳤다. 남의 돈을 얼마나 많이 빌리는지가 능력의 표시다. 은행에서 우대받는 대표적인 직업이 의사와 공무원, 교사 등이다. 이들 직업에 대한 선호도는 2000년대 들어 더 높아졌다. 외환위기 이후엔 기업 경영에서 기술이 아주 중요해졌지만, 2000년대 초 신문 지면에 자주 오르내렸던 문구는 이공계 기피였다. 학력고사 수석이 물리학과나 전자공학과에 진학하던 지난 세기와 달리, 새로운 세기에는 수능 고득점자들이 대부분 의과대학으로 쏠린다. 공무원, 교사가 되려는 경쟁도 전보다 훨씬 뜨거워졌다. 그리고 이들 직업은 안정성도 높으므로, 은행 역시 쉽게 대출을 해준다.

남의 돈을 끌어당겨 강남 부동산을 사는 일이 외환위기 이후 주류 집단의 상징이 되면서, 너도나도 부동산 매입 경쟁에 뛰어들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가계 부채는 그 결과물이다. 은행이 빌려준 돈은 공장 대신 아파트와 상가로 흘렀다.

그런데, 익숙한 풍경 아닌가. 김우중으로 대표된 지난 세기의 기업가들은 ‘사업은 남의 돈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지금, 강남의 부동산 주인들은 ‘투자는 남의 돈으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가계가 옛날 기업을 닮았다. 실제로 어지간한 강남 아파트가 작은 회사의 자산보다 비싸다. 강남 아파트를 팔면, 기업을 살 수 있다. 빚을 잔뜩 끼고 아파트를 산 이들의 표정 위로 김우중 회장이 겹쳐 보인다. 곳곳에서 ‘작은 김우중’을 만난다. 빚을 끼고 기업을 인수했던 김우중의 시대는 영원하지 않았다. 대우 식 경영을 닮은 가계경제 운용 역시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그때를 대비 해야 한다.


성현석

언론인. 16년 남짓 기사를 썼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글을 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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