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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05 에세이

그런 페미니스트

2019.07.19 | 요즘여자이야기

“요즘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한남충이라는 혐오적인 단어를 쓰거나 모든 남성을 싸잡아 욕하고… 뉴스나 웹상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좀 그렇잖아요. 지은 씨를 좋아하지만 그런 부분이 조금 망설여져요.” 그에게서 나온 말에 나도 모르게 싸늘한 표정을 지은 순간, 내 귀에는 마치 뺨을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이명이 울렸다.

“삐- 유감스럽지만, 방금 썸이 운명하셨습니다.”

전원 플러그를 뽑은 전자기기처럼 상대방에게 품었던 모든 찌릿한 호감이 한순간에 달아나는 말들. 나는 그런 문장들을 가리 켜 ‘킬 스위치’라고 부른다.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쓰는 페미니 스트라는 것을 연애 상대들에게 알리기 시작한 후부터, “혹시‘그런’ 페미니스트세요?”, “왜 지은씨 같은 사람이 페미니스트를 해요?”, “페미니스트면서 왜 연애를 해요?”라는 식의 편견 섞인 발언이 나의 킬 스위치 리스트에 하나둘씩 추가되고 있는 요즘이다.

호감을 나눴던 연애 상대들이 페미니스트의 존재를 볼드모트처럼 취급하며 뒷걸음질 치는 모습,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바이러스 감염자를 검역하듯 나의 사상을 검증하려 드는 집요함을 마주하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논쟁의 끝에 결국 이 성과 상충할 수 없는 감정을 정리하면서도 그 속엔 한 가지 의문만이 남았다.


“도대체 그들에겐 페미니스트라는 존재가 무엇일까?”


적어도 페미니즘을 이유로 내게 호감을 잃어간 그에겐 페미니스트란 무조건적으로 남자를 혐오하고 깎아내리려는 존재, 굳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페미니스트면서 연 애를 시도하는 것이 마치 적군과의 동침처럼 의아해 보였던 건지도 모른다. 남성들을 싸잡아 혐오하지 말라는 사람이 오히려 페미니스트라는 집단을 뭉뚱그려 혐오하는 모순은 지금 생각해도 솔직히 코웃음이 날 정도지만.

‘페미니스트와의 연애’에 대한 논쟁은 요즘 들어 기사에서도 흔히 거론할 만큼 우리 사회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짧은 치마를 입지 마라. 가슴이 파인 옷을 입지 마라”는 식으로 여성의 옷 스타일을 단속하는 것을 데이트 폭력이라고 지적하다 싸운 커플 또한 그 경우에 속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쓰이는 성차별적인 발언들, 맨스플레인 등의 문제로 남녀 간의 끝없는 토론이 점화되지만 그저 ‘페미니스트와의 연애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끝맺는 몇몇 사람들을 볼 때면 고구마 100개를 삼킨 듯 속이 답답해진다.

영화 <그날의 분위기> 스틸

애초에 우리는 서로에게 이 모든 화살의 시위를 겨눌 필요가 없다. 설정된 전제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득만을 위해 상대방을 밟고 올라가려는 수단이 아니라, 그저 타고난 성에 의해 차별받는 사람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다. 페미니즘의 사전적 정의는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계급, 인종, 종족, 능력, 성적 지향, 지리적 위치, 국적, 생물학적 성과 사회·문화적 성별등으 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운동’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페미니즘이란 남들보다 나은 권리를 누리려는 움직임 따위가 아니라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갖지 못하거나, 부당한 성 역할을 공동체에 의해 강요받거나, 혹은 교육과 사 회 진출을 비롯한 기회를 균등하게 얻지 못하는 이들을 사선에서 보호하기 위한 연대라는 뜻이다.

내 여자친구나 아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은 “나의 인권보다 당신의 인권이 낮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어떠한 부당함에도 침묵하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로 가는 길은 어느 한 집단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닌,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키우고 한 줌의 공감일지라도 쥐어보려는 노력으로 다져진다. 설령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는다 해도, 그것을 입은 여성의 행실을 욕보이는 대 신 그 모습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이들에게 일갈하는 것이 옳은 것처럼 말이다.

페미니즘과 연애는 충분히 공존할 수 있으며, 어쩌면 공존해야 마땅한 것이다. 어느 한쪽이 부당한 연애는 결코 서로를 존중하는 형태일 수 없다. 사랑에 담긴 근본적인 뜻 자체가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라면 오히려 페미니즘은 연애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구성 요소가 될 것이다. 이득이 아닌 사랑을, 싸움이 아닌 대화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와 그에 속한 우리의 연애가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적어도 나의 페미니즘은 그러하고, 페미니스트로서 연애하고자 하는 방식은 그러하다.

Editor 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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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지창욱 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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